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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 험이나 칼이랴
- 등록일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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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 험이나 칼이랴
지금 여러 가지 다른 단어들로 표현이 되어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은 전부 율법을 가리키거나, 율법에 의해 파생되는 현상들입니다.
∎ 환난이란?
들립시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율법 안에서는 너희가 당할 건 환난 밖에 없어! 란 말입니다.
시어머니는 예수 안 믿는데, 내가 예수 믿어서 시어머니가 막 구박하는 걸 환난이라고 안 그래요.
‘들립시스’는 율법 아래에서 코피 터지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 그걸 어떻게 해결하려고 애쓰는 이들의 그 상태를 환난이라 그래요.
뭐 대단하게 예수 믿는다고 세상이 여러분을 핍박 안 해요.
내 스스로 그 말씀을 율법으로 가지면, 내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면서, 아닌 척 하면서 가지만, 힘들어 죽겠는 거,
그걸 ‘들립시스, 환난’이라 그래요.
∎ 곤고란?
‘스테노코리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에서 그 좁은 문의 ‘좁다’라는 뜻이에요.
내 스스로 그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문 앞에다 장애물을, 율법으로 막아 놓고는, 그리고는 ‘좁다’하고서 안 들어가는 거요.
그래서 주님이 그러는 거예요.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돼. 그건 네가 치울 수 있다니까. 그건! 그 율법을, 그 진리로 이해하면.
그 장애물은, 네가 놓은 그 장애물은 치울 수 있는 거야!’ 그런데 그 누구도 그 문으로 안 들어가려고 한단 말예요.
그래서 주님이 그러는 거예요. ‘그거 치우고, 그리로 들어가라’는 거예요. 넓은 문을 찾아서 그리로 가지 말고.
인간 보편이 다 지향하는 그 문으로 가지 말고. 그 문이 무슨 문인지 깨달아 알아, 좁은 것 치우고 네가 들어가라는 거예요. 그게 ‘곤고’라는 말입니다.
∎ 핍박이란?
‘디오그모스.’ 이건 ‘데일로스’와 ‘디아코노스’의 합성어인데, ‘데일로스’는 ‘무서움, 두려움.’ ‘두려워하는 자는 반드시 형벌이 있다’ 했을 때의 두려움이에요.
‘디아코노스’는 ‘목사, 집사, 말씀을 전하는 자’란 뜻이에요. ‘디콘, 집사죠? 말씀으로 섬기는 자’란 뜻이죠.
어떤 이가 나에게 말씀을 전해주는데, 내게 오는 게, 자유와 평강이 아니라, 두려움이야. 그때 그걸 ‘핍박’이라 그래요.
구박하는 게 아니라, 말을 잘못 전해주어 내가 그걸로 두려움을 갖게 돼. 대부분의 오늘날 그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길흉화복(吉凶禍福)까지도 그분이 쥐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분에게 쫄아서 믿는 척 하는 거지, 믿는 게 아니라니까요.
하나님 앞에 쫀 거예요. 그런데 그걸 믿음이라고 한다고.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걸 성경이 ‘핍박(逼迫)’이라 그래요.
말씀을 전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바울보고 그러죠. ‘왜 네가 나를 핍박해?’
∎ 기근이란?
‘리모스’라는 건, 식량이 아예 없는 상태인데, 우리가 그 하나님의 그 말씀을 하늘의 진짜 그것으로 못 먹으면,
공갈 빵 같이 허황된 걸 씹게 되죠. 그러면 씹히는 거 없이 이만 갈리게 되겠죠. 지옥을 묘사할 때 항상,
이를 간다는 표현을 쓰는 거죠. 제대로 된 양식을 못 먹는 거, 그 상태가 ‘리모스’예요.
말씀을 진리로 못 받고 율법으로 받으면, ‘이’만 가는 거예요.
∎ 적신이란?
‘귐노테스’는 진리의 겉옷을 입지 못해 벌거벗은 상태. 겉옷은 뭐라 그랬어요?
진리의 옷! 의의 흰옷! 진리의 겉옷! 그걸 못 입으면 에덴동산의 부끄러운 적신이 되는 거죠.
그런데 진리의 겉옷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깨달아 알아야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위험이란?
위험이라는 건 앞에 나열한 이 모든 것이, ‘위험, 킨뒤노스’인 거예요.
∎ 칼이란?
우리의 목을 자르는 거예요. 우리를 멸망시키는 도구이지만, 그 칼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어로 바꾸면 ‘헤레브’인데,
그 단어를 추적해 올라가면, ‘가뭄’이란 뜻이에요. 물이 없어 양식이 자라지 못하는 상태를 칼이라 그래요.
그래서 구약에서도 바로 그러한 진리가 없는 상태를 ‘칼’이라 그래요. ‘저주의 칼’이라고 하죠.
우리는 그 말씀을 진리로 받지 못하면, 그게 우리의 진리의 물로서 쏟아지지 않아, 양식이 없는 상태가 되어,
그 말씀이 나를 죽이는 ‘칼’이 되는 거예요. 오히려! 그러나 진짜 칼은, 성경의 검은,
우리에게 내려와 우리를 살리는 검이 된다니까요. 내 육의 몸을 자르는 칼, 그러한 대조적인 개념으로 쓰는 거예요.
※ 진리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성경말씀을 표피적인 법으로만 이해하고, 사유의 논리로만 해석을 하려할 때,
말씀은 환난을 주고, 곤고로 길을 막으며, 핍박의 말이 되며, 영의 양식이 되지 못해서, 영적 기근의 상태로 만들어버리고,
무화과나무 잎사귀 띠로, 엉성하게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린, 그런 벌거벗은 자가 되게 하고,
가뭄의 칼로 그 사람을 난도질하게 된다는 거예요.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이 진리로 이해되지 못했을 때의 이야기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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