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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과 불안정
- 등록일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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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불안정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거나 뒷걸음치는 태도, 요컨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의존하는 태도는 우리에게 상당히 큰 유혹이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그것에 매달릴 수 있다.
우리는 미지의 것, 불확실한 것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데에 불안을 느끼며, 그래서 그렇게 하기를 피한다.
그 발걸음은 일단 내딛고 난 다음에는 위험스럽게 보이지 않을는지 몰라도 그러기 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위험스럽고 겁나 보인다.
옛것, 이미 겪어본 것만이 안전하다. 새로 내딛는 발걸음은 실재의 위험을 감추고 있고,
이것이야말로 왜 사람들이 자유를 두려워하는가 하는 이유의 하나이다.
이렇듯 소유가 주는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한 비전을 지니고 새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
앞으로 내디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찬탄한다.
신화에서는 영웅이 이런 실존방식을 구현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영웅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 땅, 가족, 재산-을 버릴 수 있는,
그리고 물론 두려움은 있지만 그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낯선 곳으로 떠날 용기를 지닌 인간이다.
불교에서는 힌두교 신학이 제공했던 일체의 신념, 신분, 가족을 포기하고 은거의 삶의 행로를 택한 석가모니가 영웅이다.
유대교의 전통에서는 아브라함과 모세가 그런 영웅적 인물이다.
기독교에서의 영웅은 예수로서, 그는 아무것도 소유한 것도 없고 세인의 눈으로 보면 별 볼일 없는 존재이지만
만인에 대한 넘치는 사랑으로부터 행동하는 인물이다.
우리가 이런 영웅들을 찬탄하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우리의 길도 그들이 걷는 길과-
그 길로 접어들 수만 있다면-같아야 한다는 느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고 영웅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영웅은 우상이 된다. 전진할 수 있는 우리의 잠재력을 그에게 떠넘기고 우리 자신은 있는 그 자리에 머문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영웅이 된다는 것은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신 나간 짓이며 자신의 이익에는 어긋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용의주도한 사람, 무엇인가를 확보하고 있는 사람은 안정된 상태에 있다고 여기지만,
그들은 필연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돈, 특권, 자아-요컨대 그들 자신의 외부에 있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잃을 때-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것이란 동시에 언제라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나의 소유가 곧 나의 존재라면 나의 소유를 잃을 경우 나는 어떤 존재인가?
패배하고 좌절한 가엾은 인간에 불과하며 그릇된 생활방식의 산 증거물에 불과할 것이다.
소유하고 있는 것이란 잃을 수 있으므로 나는 응당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언제이고 잃을세라 줄곧 조바심 내기 마련이다.
도둑을 겁내고, 경제적 변동을, 혁명을, 질병을, 죽음을 두려워할뿐더러,
사랑하는 행위에도 불안을 느끼며, 자유, 성장, 변화, 미지의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진다.
그리하여 신체상의 질병 뿐만 아니라 내게 닥칠 수도 있는 온갖 손실에 대해 끊임없는 걱정에 싸여 살며 만성적인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에 떠밀려서 방어적이 되며 가혹해지고 의심이 많아지고 결국, 외로워진다.
가진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위험에서 생기는 불안과 걱정은 존재적 실존양식에는 없다.
존재하는 자아-나일 뿐 소유하고 있는 것-나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나를 앗아가거나 나의 안정과 나의 주체적 느낌을 위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중심은 나 자신의 내부에 있고-존재하면서 나의 고유의 힘을 표현하는 능력은 나의 성격구조의 일부로서 나에게 달려 있다.
물론 이 점은 정상적인 삶의 상황에 해당되는 것이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하는 질병이나 고문,
그밖의 여러 가지 자신의 능력을 빼앗기는 사례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소유는 사용에 따라서 감소하는 반면, 존재는 실천을 통해서 증대한다.
이성의 힘, 사랑의 힘, 예술적 및 지적 창조력 등-이 모든 본질적 힘은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불어난다.
베푸는 것은 상실되지 않으며, 반대로 붙잡고 있는 것은 잃기 마련이다.
존재적 실존양식에서 나의 안정에 대한 유일한 위협은 나 자신의 내부에 있다.
삶에 대한 믿음과 나의 생산적 힘에 대한 신념의 결여에, 퇴보적 성향에, 내면적 게으름에,
나의 삶에 대한 결정을 타인에게 떠맡기려는 것에 등. 그러나 이러한 위험들은 존재에 반드시 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상실의 위험은 소유에 항상 내재한다.